늙어간다는 것
오래전부터 빨리 걷거나 전철 역사의 높은 계단을 오르거나 할 때마다 숨이 차고 가슴이 아파 간혹 굳어버린 석고상처럼 어지럼증에 말려들지 않으려 난간을 붙잡고 그대로 서 있거나, 심한 경우 주저앉아 그 고비를 넘기곤 해 왔다는 그.
전무이사라는 중압감에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어리숙하리만치 온순한 성품을 가진 그는 임기 3년을 겨우겨우 떠밀려오듯 채워왔다.
능력도, 대외적인 사교성도, 언변도, 치밀한 사고와 분석력도 없던 그는 사람 하나 착하다는 주변의 평 하나로 평생을 살아온 분이다.
우리 사무실에 자주 놀러 오던 은퇴한 노신사 한 분이 어쩌다 흘러가는 그의 가슴앓이 이야기를 듣다가, 마침 잘 아는 의사가 과장으로 있다는 ‘순천향 서울병원’에 그를 끌고 갔다. 자기 몸 하나 아픈 것도 스스로 병원을 찾아 나서지 못할 만큼 겁이 많고, 의지가 약한 분이라, 불 감청不敢請일지언정 고 소원固所願이라는 말처럼 보호자의 손에 이끌려가듯 그를 따라 병원에 갔다.
꼬박 하루 동안의 여러 가지 검사와 진단 끝에 병원에서는 동맥경화에 의한 혈관 유착이 진행되고 있는 몇 군데를 찾아냈고, 연신 그는 ‘어쩐지…’라는 말로 그간 그의 의문점을 해결하게 되었다. 모두 세 군데의 좁혀진 혈관을 가느다란 스텐트를 삽입하여 확장해주는 수술을 해야 했는데, 애초 가슴을 절개하려던 계획을 몇 차례 수술진들의 회의 끝에 다행히 허벅지의 혈관을 통해 그곳으로 스텐트를 삽입해도 되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가슴 절개는 전신마취지만, 허벅지 혈관을 통한 수술은 부분 마취로 마칠 수 있는 수술이어서 겁이 많은 그는 수술 내내 초음파기 모니터로 보이는 자기 심장 부위를 자꾸만 눈을 감고 외면을 하였더란다. 여하튼 수술은 잘 끝났고, 그는 이틀 후에 퇴원을 했다.
우리는 그가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온 다음 날, 병문안을 갔다. 나와 전무님 밑에서 차기 전무로 지명되어 근무하고 있던 김 이사, 우리 사무실 같은 층에 있던 00조합의 홍 전무님, 이렇게 셋이서. 그 불안해서 죽을 것 같았던 수술이 잘 끝나고, 한고비를 무사히 넘겼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는지 그는 병실 침대 위에서 연신 벙글거리며 웃고 있었다. 수술받은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활기가 넘쳤고, 심지어 그 흔한 포도당 수액도 꼽지 않고 있었다. “참 좋은 세상이야.” 병문안을 갔던 두 연배는 연신 부러움의 말을 뱉어낸다. 언젠가는 자기들에게도 찾아올지 모르는 그 불쾌한 고비를 먼저 매를 맞은 듯 후련하게 끝낸 사람이 부럽다는 듯.
병문안을 마치고 셋이서 삼각지역 뒷골목의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섰다. 생대구탕이 맛깔스럽다는 홍 전무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식당 안엔 방송 3사에서 취재가 되었다는 포스터가 덕지덕지 걸려있었고, 넓지 않은 홀엔 손님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요즘 식당치고 방송사에 소개되었다는 홍보 현수막 하나쯤 없는 곳이 거의 없다 보니, 이제 이런 식의 광고는 아무런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소주가 나오고 둘은 술을 못 하는 나를 대신해 주거니 받거니 잔을 기울인다. 두 병이 비워지고, 세 병째 술잔이 채워지면서 그들은 이제 황혼에 이른 자신들의 삶에 대해 푸념 같은 취언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말이지유, 아버지 돌아가시고 그게 원래 나 허고 나누기로 한 거였는디…. 밭하고 과수원, 글고 조그만 산하나 말 이유. 근디 형님이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싱께 여지껏 모르는 체 허고 입을 싹 닦구 있당게요. 어쩌유, 그거 받고 싶은디…. 홍 전무님, 그거 받어야 겄지유?’
김 이사는 마지막 인생에서 자신의 몫을 받아내고 조금은 안락하게 황혼을 물들이고 싶은가보다.
“아니, 아니….”
술에 취한 홍 전무가 손사래를 친다.
“에이…. 그거 받아서 뭐해?”
“받지 말어유? 받지 말으까?”
“에이~ 받지 말어. 그거 없어서 못 사는 거 아니잖아. 괜히 다 늙어서 형제간에 이 나지 말고…. 받지 말어.”
“그려야 되겄지유? 그려도 울 형님이 너~머~해유.”
“나는 사실 그거 받으믄 여기 일 끝나고 물러나면 그리 갈 생각이었시유. 시골에…. 거기서 죽을라구유.”
“어…. 그래?”
“그럼유. 이제는 말이지유, 전무님이나 나나 죽을 준비혀야 혀유.”
“에이~ 머 벌써 죽어.”
“아니유, 이제는 설설 죽을 준비 혀야지, 그 준비 안혀놨다가는 자식들한티 짐짝밖에 안되유.”
“허긴 그래. 그래도 난 죽을때까지는 재미나게 살다 죽을거야. 난 시골선 못살아.”
“나는 어려서 시골 살다가 장성혀서는 내내 도시로 어디로 돌아댕겼으니께, 더 나이 들믄 조용히 시골로 가야겄시유.”
“내려가서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살다 갈라고요.”
늙은 사내 둘은 얼굴에 홍조를 가득 띠고, 혀가 완전히 풀린 채로 꼬박 세 병을 다 비우고, 마지막 술병을 거꾸로 흔들어 술 방울이 더 떨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에는 이미 어둠이 거미줄처럼 땅바닥에 깔려있었다. 홍 전무를 대방역에까지 모셔다드리고, 다시 김 이사를 모시고 북가좌동으로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김 이사는 홍 전무를 따라 대방역에서 같이 내린다. 한사코 차로 집까지 가라는 홍 전무의 말을 무시하고, 그는 홍 전무와 함께 대방역 쪽으로 걸어간다.
“안 되유. 내가 신도림까지 가서 갈아타면 되유.”
자그맣고 여윈 홍 전무 뒤를 따라 거구의 김 이사가 어깨를 구부정히 뒤를 따른다.
사람은 누구나가 혼자 세상에 오지만, 가는 순간까지는 늘 누구에겐가 기대고 살아간다. 설혹 가는 순간엔 다시 혼자가 된다 하더라도, 숨이 붙어있는 동안은 의지하고 기대고 싶은 정情을 따라 비틀거리며 어둠이 깔린 밤을 같이 가고 싶어 한다.
대방역 회차 지점을 돌아나오는데 구부정한 김 이사의 등이 불쑥 솟은 채 인파에 떠밀려 가고 있다.
2007-03-20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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