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
최지인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트럭이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카페테라스에 놓인 철제 의자는 조금 녹슬었다. 녹슨 의자라니, 딱하기도 하여라!
파란색 배경 앞에 있으려니까 입술이 제멋대로였다. 입술을 가지런히 놓아두면 눈과 코가 달아났다. 귀라도 얌전하니 다행이었다. 사진사가 셔터를 눌렀다.
인사 담당은 당황하겠지. 이런 부류는 녹슬지도 않는다며 흉을 볼 거야.
비탈길이 무서웠지만 비석 옆에선 대담해졌다.
어릴 적 살던 집에선 사람들의 오가는 발이 보였습니다. 그 발을 보며 자랐습니다. 그 아이는 자라서 한 공원을 산책했다. 모름지기 프로의 산책은 사무적인 법.
공원에 있는 벤치는 여든일곱 개, 그중 스물세 개는 등받이와 팔걸이가 있었고, 서른한 개는 등받이와 팔걸이가 없었고, 열네 개는 망가졌고, 아홉 개는 사라졌고, 나머지는 실수였다.
죄를 고백하고 죗값을 치렀을 땐 이미 늦었다.
몸통이 날아올랐다. 긴 시간, 찌그러진 범퍼를 보았고, 트럭 운전수의 표정을 따라했다.
푹 하고,
바닥에 눈이 쌓였다.
최지인
1990년 경기 광명 생.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극작 전공
2013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창작동인 ‘뿔’ 멤버
시집 – 『나는 벽에 붙어잤다』동인시집 『한 줄도 너를 잊지 못했다』
이 시가 실린 시집 구매
이력서는 취업을 위해 자신을 홍보하는 전단지다. 이력서를 들고 수없이 문을 두드려 본 사람은 대게가 중간층 이하 계급일 경우가 많다. 양질의 혜택을 받으며 태어난 상류층은 빛나는 스펙과 빛나는 학벌과 빛나는 부모의 계급에 힘입어 한 두 번의 시도로, 혹은 연결 네트워크를 통해 쉽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이 시의 주인공은 불운하게도 여든일곱 번의 시도를 했고, 스물세 번까지는 그래도 면접까지 가보기도 했지만, 서른한 번은 2배수나 3배수 쯤의 안에 들어보기도 했지만, 그 뒤로 열네 번은 서류전형에서 조차 탈락했고 그 후로 아홉 번은 접수 대상에서조차 밀렸고, 그 이후로는 자포자기였다.
그는 자신을 포장하는 요령이나 재주가 없어서 표정 관리가 안된 사진을 그대로 이력서에 붙이고, 죽을 둥 살 둥 발이 부르트게 취업의 문을 두드린다. 그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에 대한 공포로 죽음조차 두려워 할 여유가 없이 끈을 붙잡으려 발버둥친다. 그가 면접에서 자기 자신을 소개해보라는 주문에 ‘어릴 적 살던 집에선 사람들의 오가는 발이 보였습니다. 그 발을 보며 자랐습니다.’ 라고 대답한 것은 8~90년대 까지나 통했던, 가난을 극복하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개천에 대한 묘사였다. 면접관들은 개천을 살펴 볼 이유가 없었다. 구불 구불하고 시궁창 냄새가 진동하던 청계천이 복개되고, 콘크리트와 시멘트로 만든, 취수장 물을 끌어와 깨끗한 물줄기가 도심을 가로지르는 신기루가 현실이 되어있는 세상이었다. 더 이상 개천은 이 회색 도시에 어울리지 않았다.
여든일곱 개의 벤치는 그가 세상의 끈을 잡지 못한 오랜 시간들과도 맞닿아 있다. 얼마나 벤치에 오래 앉아 있었으면 그 많은 벤치와 특징을 다 기억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그에게 ‘백수’라는 이름을 주었다. 인생은 그에게 “죄를 고백하고 죗값을 치렀을 땐 이미 늦었”음을 일러 준다. 그 죄는 흙수저로 태어난 죄. 어쩌면 그는 이번 생은 망했다는 걸 직감했을지도 모른다. 문으로 들어가는 곳은 높은 곳에 올라 앉은 채 너무 기울어져 있었고, 세파는 그를 향해 가혹하게 밀고 들어왔다.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트럭이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는 첫 연은 마지막 연과 연결되며 그의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묘사한다. 트럭 운전수의 표정을 따라했다는 말은 가지지 못한 자들의 죽음마저 우스갯거리로 조롱하는 슬픈 역설이다. 이 역설은 ‘이력서’라는 제목으로 그의 이력에 남아있던 알량한 무게 마저 덜어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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