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왜 점점 힘들어지는 걸까.
사람들이 신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신이 존재한다면 왜 세상은 점점 더 악해지고 고통스러운 곳이 되어가는 걸까’ 라는 질문일 것이다. 신은 본래 세상의 일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신은 본래부터 본래대로 계셨고 그분은 있어도, 없어도 그 있고 없음의 원천이다. 우주가 소멸한다 해도 소멸된 상태의 본질은 신이다. 우리가 우주의 한계를 말하지만 나는 신의 한계를 말한다. 한계없음이 신이다. ‘그대로’가 신이다. 있는 그대로, 없는 그대로가 신이다. 신과의 인연으로 조성된 만물 위에서 지지고 볶는 건 인간의 일이다.
세상이 점점 험난해져 가는 이유는 우리들 탓이다. 순전히 우리들 카르마의 작용 결과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신의 성품에 맞추어 살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을 현상이다. 이 세상은 철저히 카르마의 원칙이 작동되는 곳이다. 선한 업을 쌓아 놓으면 좋은 세상으로 변할 것이고, 악한 업을 쌓아 놓으면 세상은 점점 더 고통스러운 곳이 되어 갈 것이다. 힘들여 수로에 제방을 쌓고 바닥을 잘 골라 놓으면 흐르는 물은 잔잔하고 부드럽게 흐를 것이고, 제방을 만들지도 않고 무너진 토사를 외면하고 바닥에서 굴러오는 퇴적층이나 자갈들을 치우지 않고 방치해두면 물은 거칠어지거나 쫄쫄거리고, 막혀버리기도 한다.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건 카르마의 작동 원리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을 찬송하고 기도하며, 고통에 빠진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준다. 기쁜 일에 즐거워하고, 슬픈 일에는 눈물을 흘리며 비통해 한다. 아직도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다수인데 세상은 이 모양이다. 왜 그럴까. 이유는 명료하다. 사람들이 악한 카르마를 쌓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선한 일을 했는데 악한 업장을 쌓았다고? 여러분이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면 세상 만사의 돌아가는 이치는 수많은 인과와 연결 관계에 촘촘히 얽혀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선으로 여기고 실행한 행위가 단순히 그것에서 멈추지 않고 파생되는 인과를 남기고 그것은 다른 대상에게는 고통을 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내가 오늘 길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는 선하나 몰려드는 고양이들로 인해 불편과 고통을 당하는 이웃이 생기는 파생의 인과도 함께 생긴다. 그러나 당사자는 지극히 단순하게 자신의 선한 행위만을 인지하는 것에 그치고 만다. 그런 일들은 우리들의 삶에 매우 흔하다. 교회나 사찰의 실상을 알고 보면 사람들이 내는 헌금이나 보시가 지도자들의 배를 불리고, 그들의 이권을 강화해주고, 그들이 점점 더 거만하고 가증스러운 자들이 되어가는 데 큰 일조를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신도들은 그들의 그런 행태에 눈감고, 그럼에도 신께서는 내 마음의 중심을 보실거라는 세뇌된 신념으로 끊임없이 그 악을 불려주는 데 열심히 동참하고 있다. 고통 속에 처한 세상의 어려운 사람들을 광고하여 기부금을 끌어 모으는 단체들이 그 돈의 대부분을 직원들의 급여나 재단 운영비로 사용 한다는 것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기부를 멈추지 않는다. 연말정산을 받기 위해 기부금 영수증을 챙기는 사람들, 스펙 쌓기 위해 봉사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넘쳐 난다. 모두 선을 행하고 있다고 믿는 행위들이고, 악한 카르마를 동시에 쌓아가고 있는 행위들이다. 알면서도 모르면서도 사람들은 이런 행위에 일조하거나 기꺼이 동참 중이다. 여러분들이 참으로 선의 본질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지금처럼 계속 행동한다면 악한 업보로 인한 고통은 세상의 목을 점점 더 조여 올 것이다.
신을 원망하지 말자. 신은 개입하지 않는다. 신은 ‘그대로’ 다. 그대로 라는 토대 위에서 분노하고 징계하고 연민하고 자비를 품는 하느님과 시바와 부처님은 신이 아니다. 신은 그 분들을 있게 한 원천이다. 지구가 파멸 되면 지구의 인연이 다 한 것이고, 사람들이 들려 올라가면 무엇인가 위에서 끌어 올리는 게 있기 때문이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면, 그는 그때 아직 죽은 게 아니어서다. 신이 개입한 게 아니다.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그대로’의 상태가 신이라면, 그 신의 법칙 안에 놓여있는 풍선은 비유하자면, 카르마다. 찌르면 터지는 게 카르마고, 한 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솟아 오르는 게 카르마의 법칙이다. 그 법칙엔 예외가 없다. 신이 인간사에 개입한다면 그건 카르마의 법칙에 예외가 있다는 말인데 그런 건 있을 수 없다. 칼로 찔렀는데도 풍선이 안 터지고, 한쪽을 눌렀는데도 다른 쪽이 올라오지 않는 그런 건 있을 수 없다. 세상이 이 모양인 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한 쪽을 눌러대서 다른 쪽이 터질 듯이 팽팽히 솟아 오른 거다. 알면서도 눌러 대고, 모르면서 눌러대서다.
선의 본질을 알고 싶거든 우리들의 시야와 생각을 내면으로 돌려야 한다. 그래서 명상이 선한 행위보다 백 배 낫다. 끊임없이 명상하고 하심下心해야 한다. 신은 권위를 내세우는 이들의 해석이나 설교 없이도 선의 본질을 알게 하신다. 사랑은 내면에서 드러나고 성장하는 신의 본성이다. 내면으로 향한 시선을 거두고 밖에서 선을 찾으려 드는 사람은 수많은 지뢰밭 길을 걸으며 선으로 위장된 술수에 농락당하기 십상이다. 선하지 않은 것들이 쌓여가는 이유다. 만일 세상 사람들이 선의 본질대로 선을 행하면, 세상은 점점 더 나아지는 게 당연하다. 그래야 카르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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