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간과 골방과 뒤안
너른 바닥 한쪽에 거름용 재가 수북하다. 언제 들어와도 고즈넉하다. 어쩌다 한 번씩 드나드는 아이들이 볼 일을 보기가 무섭게 내빼버리는 곳, 뒷간. 어쩌면 빨간 얼굴을 한 귀신이 스르르 나타날지도 모르고, 밑에서 손이 쑥 올라와 바지 가랭이를 잡아챌지도 모를 곳이다. 측간이 좁은 변소인데 비해 뒷간은 보통 창고 용도로도 같이 쓰이는 경우가 많은 널찍한 곳이라 벽에 쇠스랑, 삽, 곡괭이 같은 연장들이 반듯하게 걸려있고 바닥엔 재를 퍼 내던 삼태기가 널브러저 있기 마련이다.
오전을 지나 해가 강렬한 점심 나절이면 어둑 어둑한 뒷간에도 볕이 찾아든다. 비로소 게으른 뒷간이 잠을 깨는 시간이다. 희끄무레한 빛이 뒷간의 게으름을 비추고 그제야 낡은 연장들이며 삼태기가 조금씩 제 색을 드러낸다. 흙벽은 황토와 섞어진 볏짚들이 듬성 듬성 벽면으로 드러나 보이고 가림막도 없이 뚫려있는 작은 나무 창엔 거미줄이 미풍에 탄력 있게 흔들린다. 운도 없이 구석에 처진 주인 없는 거미줄엔 먼지만 걸린 거미줄 몇 가닥이 끊어진 채 늘어져 있다. 공구 자루들은 황갈색으로 퇴색되어 가고, 삽이며 곡괭이는 앞부리가 맨질 맨질하게 윤이 나 있다. 분뇨를 받아내는 땅에 묻힌 큰 독만 없었다면 아마도 그곳은 세상에서 제일 조용한 장소일 것이다. 뒷간은 앞마당 저만치 구석에 돌아앉아 터를 잡는다. 어느 집 뒷간의 문은 아예 문짝도 없이 툭 터져있거나 얼기설기 수숫대로 시늉만 내놓은 문이어서 그곳을 찾는 어른들은 뒷간 저만치서부터 으레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곤 했다. 안에서 아무런 인기척이 없으면 비로소 그는 부산한 바깥 세상을 벗어나 잠시 혼자만의 정적 속으로 들어서는 것이다.
뒷간이 안채와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음에 비해 골방은 안방의 옆이나 건넌방으로 자리를 잡는 곳이다. 어쩌다 명절에 우르르 손님들이 모여드는 날 외엔 도무지 온기를 받지 않는 골방은 한여름의 시원함과 겨울의 냉랭함을 품고 있다. 그곳엔 대나무를 엮어 만든 둥그런 칸막이 안에 고구마나 감자가 수북이 쌓여 있다. 거친 삼베줄을 천정에 매달고 통나무 두개를 걸어 만들어 놓은 시렁에는 씨종자 옥수수들이 너댓 쪽 씩 묶여 정갈하게 매달려 있고, 지난 여름 틈틈이 따 담갔던 매실과 머루는 큰 병 속에서 진하게 묵혀지고 있다.
이 적막을 깨는 것은 가끔 씩 우당탕 거리는 천정 속의 쥐들과 화들짝 술래를 피해 골방으로 뛰어들어 고구마 더미 뒤로 파고드는 아이들 뿐. 그 소란이 지나고 나면 골방은 한지 바른 문으로 햇살을 부드럽게 걸러낸 채 이 모든 적막을 담아낸다. 골방은 어른들의 위엄을 피해 편히 놀 수 있는 아이들만의 세상이다. 안방에선 시끄럽다고 꾸지람을 들을 일도 골방에서는 너그러웠다. 아이들이 깔깔거리거나 한바탕 뭉치기가 일어나도 안방에선 짐짓 담뱃대만 탕 탕 거릴 뿐이었으니까.
골방은 때로 기억하기 싫은 유년의 잡동사니 같은 곳이다. 농 아래를 긴 대나무 자로 쓸어내 보면 표지가 떨어져 나간 색 바랜 공책, 공깃돌 한 두개, 퍼렇게 녹슨 동전, 부러진 몽당 연필이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쓸려 나온다. 그 편린에 얽힌 기억은 차라리 꺼내지 않았더라면 싶은 것 들이 더 많다. 골방에 들어와 오래도록 혼자 있던 시간들. 쥐 오줌 베어 있는 천장. 문고리에 걸어둔 숫가락. 쪽문을 열면 어머니가 보이던 정지가 있고 그 정지 뒷문으로 나가면 제법 너른 뒤안을 만난다.
뒤안은 수숫대를 촘촘히 엮어 만든 울타리로 담이 둘러쳐 있고, 그 너머로 대숲이 무성한 곳이다. 앞마당이 엄한 시집살이 몸가짐처럼 깨끗하게 쓸려있고, 단정하게 모양을 쳐낸 탱자나무로 담을 두르고 있는 것과는 달리 뒤안은 여인네들의 정취가 가득 배어있는 곳이다. 가지와 상추같은 채소 몇 가지 심어둔 텃밭 둘레로 봄 여름철을 무심히 자라나던 채송화, 맨드라미, 칸나, 봉숭아, 과꽃…… 수숫대 울타리론 보라색 나팔꽃이 총총히 줄을 타고, 울타리 아래엔 호박이 넓은 잎 아래 몸을 숨긴 채 노랗게 졸고 있다. 남정네가 심었을리 없는 그 소박한 풍경. 머슴이나 다를 바 없던 그 시절에 어디서 조금씩 모았을 꽃씨를 쪼그려 앉아 심던 마음은 어디를 향해 줄달음치고 있었을까.
한 쪽 모퉁이가 조금 무너져 내린 장독대 위엔 크고 작은 갈색 독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고 그 중엔 밝은 줄무늬 띠를 둘러 멋을 낸 옹기도 두어 독 눈에 띈다. 가끔 비라도 지나간 후면 장독 뚜껑 위에 고인 물 위로도 실 같은 물결이 스치듯 일어나는 것을 본 이가 있을까. 햇볕을 받은 옹기들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온기와 안락함을 품는다. 독 위에는 대나무 소쿠리 위에 놓인 생선이나 빨간 고추가 잘 말라가고, 바닥엔 정갈하게 씻긴 하얀 고무신 한 켤레가 독에 기대어 볕을 받고 있다. 가끔 한 번씩 열어두는 장독 안에는 곰팡 든 메주가 마알간 장 위에 둥둥 떠 있고, 걸쭉한 고추장은 대숲을 지나온 바람과 햇살을 품고 여름내 붉게 농익어 간다. 앞마당과 뒤안의 거리는 때로 닿을 수 없는 딴 세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앞마당 우물로 저녁 물질을 나가면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강아지들의 멍멍거림, 닭장 안으로 닭들을 몰아넣는 소란스러움. 그런 소란한 정경도 정지를 지나 뒤안에 이르면 어느 순간 쥐죽은 듯 고요하다. 어머니는 많은 세월을 그 뒤안에서 홀로 상추를 뜯고 장독을 여닫으며 외할머니를 그렸을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 그 옛날의 뒷간과 골방과 뒤안은 다시 돌아가고 싶은 유년의 추억을 질기도록 되짚게 한다. 가족의 부양을 짊어지고 뒷간에서 삽과 괭이를 집어 들던 아버지들은 어떤 한숨과 말 없는 고독을 그 뒷간에 걸어두었을까. 어머니들의 뒤안은 또 어떤 애달픔으로 그 시절을 덧칠했을까. 철없던 우리들의 이야기는 또 얼마나 많은 추억으로 그 골방 앞을 맴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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